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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 #247

    202602 #247

    엄마가 소중히 여기고 보관하는 것이 하나 있다.
    중학교 3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쓴 내 일기장이다.

    제목은 늘 같았다.
    달.

    유치원 다닐 무렵 이미 깨달았다.
    또래 남자애가 즐거워하는 것들이 내겐 전혀 재미가 없다는걸.
    오히려 불편하다는걸.
    나는 많이 다르다는걸.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책으로 버텼고, 중학생이 되면서 불행을 알게 됐다.
    기댈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 결론을 내렸다.

    난, 달에서 왔어.
    차라리.

    그 문장은 일기장의 첫 페이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가 컴퓨터를 사줬다.
    모뎀 시절, 인터넷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렸지만,
    그 안의 세계는 나를 구원하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매일 밤을 야후Yahoo와 함께 새웠다.
    1996년, 열여섯 살.
    다운로드한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섬머 드레스〉를
    수없이 돌려 보며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진정한 자위.
    뱅뱅.

    해방에 가까웠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고민하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기계로부터 얻었다.

    안양 호계동의 18평 아파트에서.

    지구도 달도 하나의 우주라는 것.
    달도 지구도, 모두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SF에 빠졌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로
    우주가 지나치게 방대하게 느껴질 무렵,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통해
    우주는 예민할수록 잘 보인다고 믿게 됐다.

    〈에이리언〉과 〈로보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미쳐 있다가
    〈지구 최후의 날〉, 〈혹성탈출〉, 〈알파빌〉 같은
    1950~1960년대 흑백 SF 영화를 탐닉했다.

    그 모든 집착의 귀결은 2001년 도쿄 유학 시절에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 아이(A.I.)〉였다.
    피노키오를 좋아했고, 스탠리 큐브릭을 사랑했던 내게
    그 결말은 하라주쿠보다 더 강렬하게 숨을 멎게 했다.

    그렇게 2020년대를 기다렸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본 SF 입성작 〈2020 우주의 원더키디〉처럼.

    그러고는 SF를 실현했다.
    2020년, 〈데이즈드〉 1월호에서 조기석 작가와 함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이미지를 작업해 실었다.

    2022년에는 텔레포트를 테마로 한 영화
    〈아메랄드〉를 만들었다.

    〈데이즈드〉의 오랜 마니아라면 알겠지만,
    단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VFX 기술자를 채용하고 육성했으며,
    수없이 반복되는 굽기와 렌더링을 거쳐
    퓨처리즘이라는 색을 프린트와 디지털 위에
    끊임없이 입히고, 더해 왔다.

    그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끝내 증명해 낸
    존경해 마지않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정신처럼,
    경계를 의심하고 확장하기 위해
    어스 라운드 스튜디오Earth Round Studio를 창립했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로봇과 우주 그리고 AI.
    기계와 기술, 과학과 미래.
    미치도록 설렌다.

    내게 과거만큼 끔찍한 사약은 없다.
    내가 흠모해 온 것들을 꽉 끌어안을래.

    〈데이즈드〉 코리아를 발행하는 렉스트림의 정체성을
    ‘비주얼 테크Visual Tech’로 정의했다.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신난다.
    너무.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 202601 #246

    202601 #246

    10대 시절 꿈은 ‘존나’란 욕을 잘하는 것이었다.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반 애들은 말했다.
    넌 어떻게 ‘존나’ 한 번을 못 하냐고, 그것도 할 줄 모르냐고.
    어찌나 갈망했는지 매일 밤 내 방 창문을 열고 조용히 때론 크게, 수없이 연습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 학교에만 가면 그게 안 되는 거다.
    입안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좀체 뱉어지지가 않는 거다.
    중학생 때부터 연습한 ‘존나’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독서실을 팽개치고 평촌 공원 어디에선가 애들과 배회하다 벤치에 앉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상진이를 바라보며, 다리를 조금 꼰 채, 최대한 삐딱하되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존, 존ㄴ, 존···나 덥지 않아?”
    “뭐?” 잘 안 들렸던 모양이다.
    “아니 저녁인데도 덥지 않냐고, 존나.”
    상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기 떨어져 있던 애들을 불러 모았다.
    “하하, 이 새끼가 존나래. 야, 너 존나 하지 마. 존나 안 어울려. 18.”
    그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고 집으로 오는데, 집에 와서 다시 창문을 여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딱 그 기분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존나’를 넘어
    거쳐야 할 숫자와 동물 욕까지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후로도 10년여 난, ‘존나’를 깨끗이 포기했다.

    외로운데 예민해지니 궁금하지 않던 것이 궁금해진다.
    이제는 내 주변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 심지어 비웃을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존나’를 할 줄 몰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상냥할 수 있었을까.

    나는 2026년, 이런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