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꿈은 ‘존나’란 욕을 잘하는 것이었다.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반 애들은 말했다.
넌 어떻게 ‘존나’ 한 번을 못 하냐고, 그것도 할 줄 모르냐고.
어찌나 갈망했는지 매일 밤 내 방 창문을 열고 조용히 때론 크게, 수없이 연습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 학교에만 가면 그게 안 되는 거다.
입안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좀체 뱉어지지가 않는 거다.
중학생 때부터 연습한 ‘존나’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독서실을 팽개치고 평촌 공원 어디에선가 애들과 배회하다 벤치에 앉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상진이를 바라보며, 다리를 조금 꼰 채, 최대한 삐딱하되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존, 존ㄴ, 존···나 덥지 않아?”
“뭐?” 잘 안 들렸던 모양이다.
“아니 저녁인데도 덥지 않냐고, 존나.”
상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기 떨어져 있던 애들을 불러 모았다.
“하하, 이 새끼가 존나래. 야, 너 존나 하지 마. 존나 안 어울려. 18.”
그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고 집으로 오는데, 집에 와서 다시 창문을 여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딱 그 기분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존나’를 넘어
거쳐야 할 숫자와 동물 욕까지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후로도 10년여 난, ‘존나’를 깨끗이 포기했다.
외로운데 예민해지니 궁금하지 않던 것이 궁금해진다.
이제는 내 주변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 심지어 비웃을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존나’를 할 줄 몰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상냥할 수 있었을까.
나는 2026년, 이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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