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트 패턴 코트는 마크공(Markgong), 스트라이프 터틀넥 톱은 엔폴드(Enfold), 도트 패턴 타이츠는 에디터의 것.
구사마 야요이 feat. SSONG
“뮤즈가 누구예요?” 웃기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패턴이었다. 뿅뿅 소리가 날 것 같은 동그라미의 나열, 도트. 아우터를 벗자마자 “안에 입은 옷까지 전부 땡땡이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제야 웃으며 깨달았다. 이건 취향을 넘어선 상태라는 걸.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도트 아이템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일본의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반복되고 증식하며 시선을 붙잡는 둥근 물방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Pumpkin’ 앞에서 멈춰 섰던 기억, 그리고 MoMA에서 어렵게 구해 지금까지 아끼고 있는 작은 키링 하나까지. 처음엔 패턴이었지만, 그것을 언어로 승화시킨 이름. 구사마 야요이가 결국 나의 뮤즈가 됐다.

레더 코트는 톰 포드(Tom Ford).
그레이스 존스 feat. KIM
내 인생에 특정한 뮤즈는 없었다. 이번 화보 역시 스타일을 선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아이코닉한 인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고민 끝에 떠올린 이름은 그레이스 존스. 레더 재킷과 각진 파워 숄더, 중성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에게 끌린 이유가 단지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세상 앞에 내놓은 얼굴은 언제나 씩씩하고 초연했으며, 쉽게 순종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내가 오래도록 선택해 온 페르소나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단단한 테일러링과 과감한 노출, 장식보다 실루엣을 앞세운 선택은 스스로를 지키는 갑옷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파워풀한 에너지와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함 역시 지금의 내가 가장 닮고 싶은 태도다.

레인코트와 데님 재킷, 셔츠, 팬츠, 벨트, 백은 모두 르메르(Lemaire).
사라 린 트란 feat. CATHRYN
언젠가 네가 원하는 신발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진짜지? 뭐든 괜찮은 거지?” 단숨에 르메르 더비 슈즈를 집어 들었다. 발에 착. 옥죄지 않고 착 감기는 느낌.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몸에 맞대니 알겠다. 르메르가, 사라 린 트란이 그리는 세계가 어떤 모양인지. 그의 옷은 늘 그랬다.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입는 사람에게 스며든다. 사라는 참 자연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유행에 개의치 말라고, 억지로 예뻐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한때 내 블로그 ‘love’ 폴더는 온통 그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블로그에 먼지가 쌓인 지 2년이 넘어가고, 선뜻 나 대신 카드를 긁어준 너도 이제 옆에 없다. 애꿎은 유니클로 U 원피스만 만지작.

벨벳 셔츠와 팬츠, 선글라스, 링은 모두 구찌(Gucci).
해리 스타일스 feat. JUJU
나의 유년 시절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민망함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유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랐다. 닫힌 태도는 소극적이라는 오해를 만들었고, 말이 적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기도 했다.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원 디렉션을 처음 접했을 때, 해리 스타일스는 유난히 눈에 남았다. 늘 조용했지만 무대 위 그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택하는 듯 보였다. 사적인 부분을 닫아둔 채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나의 모든 걸 드러내며 자유롭고 싶다는 데 영향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가짐을 바꾸다 보니 어느새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겁나지 않게 되었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아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나를 아예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을 열고 무엇을 지킬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점프슈트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데이비드 보위 feat. TIA
데이비드 보위는 수많은 캐릭터로 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렌지색 머리가 돋보이는 지기 스타더스트, 번개 그림이 얼굴을 가르는 알라딘 세인, 샤프한 슈트 차림의 창백한 신 화이트 듀크까지. 누군가는 메트로 섹슈얼한 미소년을, 또 누군가는 반짝이는 글램 로커나 섹시한 중년의 얼굴을 떠올리겠지만, 이는 모두 그가 내면에서 불러내 스스로 보내 준 자아들이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직 새로운 일 앞에서만 뜨거웠고, 평가는 작업 바깥에 두었다. 연기도 했고, 춤도 췄고, 화장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닮고 싶었다. 매일 새로운 나를 정의하는 사람,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 데이비드 보위가 떠난 지 10년이 되는 지금, 이 유연한 태도는 여전히 나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톱은 아미(AMI), 데님 팬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케이트 모스 feat. MEG
‘파워’를 외치며 모든 것이 과하던 ‘과잉 패션’ 시대를 지나, 1990년대 초 슬리브리스와 진, 플랫 차림의 수더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케이트 모스. ‘헤로인 시크’는 혁신이었다. 그는 옷이라는 언어로 어떻게 아이코닉해질 수 있는지를, 지금 세대가 오기까지 충분히 보여 준 인물이다. 쿨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쿨한 거. 그 안에서 여러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 나는 그런 모스를 닮고 싶다. 구태여 척하지 않는 태도. 스스로를 지키면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솔직한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변할 거다. 패션은 그 믿음의 지원군으로 남겨 두고, 케이트 모스의 유례없는 이야기를 추종하며 사랑할 거다.
text <DAZED> KOREA EDITORS
photography SHIN SUNHYE
art KIM GYEONGRAE(RAY)
model ARA, CHO JEONGYEON, JOAN PARK, KIM GYUHYUN, LULU, NIKO
hair PARK SEMIN
make-up JEONG YUNMI
Discover more in 〈DAZED〉 KOREA FEBRUARY 2026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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